탄소 배출, 이제는 무역 경쟁력의 기준입니다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이 전 세계적인 공감대를 이루면서, 환경과 산업의 경계가 점차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유럽연합(EU)이 2023년부터 도입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이러한 변화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힙니다. CBAM은 EU 내부 기업들에게 적용되던 탄소배출 규제를, 역외 수입 기업에도 동일하게 적용하겠다는 강력한 선언입니다. 즉, 이제는 물건을 잘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탄소를 얼마나 덜 배출하면서 만들었는가가 경쟁력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대다수의 국내 중소 제조업체들은 커다란 불안과 혼란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는 유럽으로 직접 수출하지 않으니 괜찮지 않을까 CBAM은 대기업만의 문제 아닌가요?”라는 질문이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하지만 CBAM의 파급력은 직접 수출 여부를 넘어섭니다. 대기업의 부품 납품업체, 중간재 가공업체, 심지어 협력업체의 협력업체까지도 이 제도의 영향권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CBAM은 단순히 규제를 넘어서 글로벌 무역의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는 유럽 수출기업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공급망 전체에 탄소배출 정보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중소기업은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단순한 과세 문제가 아니라, 탄소정보 제공 여부가 곧 기업 간 거래의 조건이 되는 현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CBAM 도입이 국내 중소 제조업에 실질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5가지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탄소라는 새로운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기업일수록 지금 이 시점에서 제도의 구조와 흐름을 정확히 이해하고, 사전에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글이 그 첫걸음을 위한 실질적 나침반이 되기를 바랍니다.
공급망 재편 우리 회사는 수출 안 해도 영향받습니다
CBAM의 가장 큰 특징은 직접 수출 여부와 무관하게 간접적인 부담을 유발한다는 점입니다. 즉, 유럽 수출 기업이 CBAM 대상 품목(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수소, 전기 등)을 생산하기 위해 중소기업으로부터 부품이나 원재료를 공급받고 있다면, 해당 중소기업도 CBAM의 보고 체계에 편입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 A가 대기업 B에 납품하고, B는 완성차를 유럽에 수출한다면, A 역시 간접적으로 CBAM 보고를 위한 탄소배출 데이터 제출 요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정확한 데이터를 제공하지 못할 경우, EU는 해당 부품에 대해 기본값을 적용하게 되며, 이는 실제보다 더 많은 탄소비용이 산정되어 최종 가격에 반영됩니다. 결과적으로 대기업은 불이익을 줄이기 위해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협력사를 점차 배제하게 됩니다.
이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거래처를 잃을 수도 있는 구조적 위협”이며, 공급망 재편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현실적인 리스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국내 주요 대기업들 역시 협력사에 ESG 요소와 탄소배출 정보를 점차 요구하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CBAM 시행과 더불어 가속화될 전망입니다.
보고 부담 증가 중소기업에게는 새로운 업무의 시작
CBAM의 본격 시행은 2026년부터지만, 2023년 10월부터 시작된 전환기에는 이미 분기별 보고의무가 도입되었습니다. 보고 대상에는 제품의 생산과정에서 발생한 직접배출량, 간접배출량을 포함하며, 제품 단위로 산정된 배출량을 EU에 정기적으로 보고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공장 전체 배출량이 아니라, 제품 하나하나에 담긴 탄소량을 정량화하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중소 제조업이 아직 이러한 보고체계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일부 기업은 ERP나 MES 시스템을 도입했더라도, 이 데이터를 국제 기준(ISO 14067, 14064 등)에 맞게 변환해 탄소배출량으로 계산하는 체계를 갖추지 못한 상태입니다. 또한 CBAM 보고를 위해서는 제3자 인증기관의 검증까지 요구되기 때문에, 기업 내부의 회계 수준과 프로세스 관리 능력도 함께 요구됩니다.
이러한 보고 업무는 대기업에게는 전담 인력이나 외주 컨설팅을 통해 비교적 수월하게 대응할 수 있지만, 인력과 자금이 부족한 중소기업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정부에서 운영하는 CBAM 대응 컨설팅, 스마트공장 고도화 지원, ESG 바우처 사업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며, 이를 통해 보고 역량과 시스템을 점진적으로 정비해 나가야 합니다.
인증 경쟁력 요구 탄소정보 없는 기업은 도태된다
CBAM은 보고만 잘한다고 끝나는 제도가 아닙니다. 제출한 데이터가 국제 기준에 부합하며,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계산되었는지를 검증해야 합니다. 따라서 유럽연합은 제출된 보고서에 대해 제3자 검증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이 검증을 받지 않은 수치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는 곧 중소기업이 국제 인증을 갖추지 않으면 글로벌 무역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대표적으로 요구되는 인증은 ISO 14064(온실가스 배출량 조직 단위 검증)과 14067(제품 단위 탄소발자국 산정 및 검증)입니다. 이 두 가지 인증은 CBAM 대응뿐 아니라, 향후 국내외 대기업과의 납품, ESG 평가, 정부조달 입찰 등에서 활용 가능한 탄소경영의 기초 인프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증은 단기간에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공정별 데이터 수집, 내부 관리체계 정비, 외부 검증 절차까지 6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준비를 시작하지 않으면, 2026년 본 시행 시기에 맞춰 적절한 인증을 갖추지 못해, 기회 자체를 잃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비용 부담 증가 탄소세가 아닌 탄소가격의 시작
CBAM의 도입은 실질적으로 수출 제품의 가격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CBAM은 EU ETS(탄소배출권거래제)에서 산정된 탄소 가격을 기반으로 수입품에 탄소비용을 부과합니다. 만약 기업이 배출량을 감축하지 못하거나, 보고를 정확히 하지 못해 기본값이 적용된다면, 그만큼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이는 수출 경쟁력 하락으로 직결됩니다.
탄소가격의 시작
기업 입장에서는 단순한 세금 외에도 보고 체계 구축, 배출량 측정 장비 도입, 외부 인증 수수료 등 각종 간접 비용이 동반되며, 이는 고스란히 중소기업의 원가 구조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로 인해 단가 인상이 불가피해지거나, 수익률 하락, 납품 포기 등의 어려움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기회는 존재합니다. 일부 선제 대응에 나선 중소기업은 CBAM 대응을 계기로 신규 바이어를 확보하거나, 대기업으로부터 전략적 파트너로 승격되는 등의 기회를 얻고 있습니다. 따라서 단기적 비용을 장기적 투자로 전환하는 전략적 사고가 지금 필요한 시점입니다.
ESG 경영 전환 촉진 CBAM은 기업 체질을 바꾸는 기폭제
CBAM은 단순한 무역 규제가 아닙니다. 이 제도는 중소 제조업이 지속가능한 생산 체계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탄소배출 정보의 체계화, 인증의 확보, 보고 역량의 내재화 등은 결국 기업 내부의 환경경영 시스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귀결됩니다. 이는 곧 ESG 경영의 첫걸음이며, 향후 투자 유치, 기술 개발, 고용 확대 등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또한 CBAM 대응은 단일 기업만의 노력으로는 어렵기 때문에, 같은 업종이나 산업단지 차원에서 공동 대응 플랫폼이나 컨소시엄 구성을 통해 대응 비용과 노력을 분산시킬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공동 탄소측정 시스템 개발, 인증기관과의 파트너십 체결, 지역 기반의 데이터허브 구축 등이 그 예입니다.
결국 CBAM은 중소기업에게 위기이자 동시에 체질 개선의 기회입니다. 단순히 외부 규제를 수동적으로 따르기보다는, 이를 기업 성장의 디딤돌로 활용한다면, 환경이 기업 경쟁력의 중요한 축이 되는 시대를 선도적으로 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탄소국경조정제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우리 회사도 대상일까요 (0) | 2025.07.04 |
---|---|
중소 제조업의 탄소배출 현황, 지금 점검해보세요 (0) | 2025.07.04 |
중소 제조업을 위한 CBAM 대응 로드맵 정리 (0) | 2025.07.03 |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시행 일정과 중소 제조업의 시급한 대응 과제 (0) | 2025.07.03 |
유럽 수출 앞둔 중소 제조업,탄소국경조정제도 CBAM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0) | 2025.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