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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국경조정제도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왜 중소 제조업에게도 중요한가요?

by nawon-80 2025. 6. 30.

환경 규제가 아닌 시장 규칙이 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기후 변화는 더 이상 과학자들의 토론 주제가 아닙니다. 실제로 전 세계 산업구조를 재편하고, 기업의 경영전략을 근본부터 바꾸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를 도입하며 글로벌 무역 질서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CBAM은 단순한 환경 규제를 넘어,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 수입 제품에 탄소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로서, 기후정의(Climate Justice) 실현과 역내 산업의 공정한 경쟁환경 조성을 동시에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많은 국내 기업들, 특히 중소 제조업체는 이 제도를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유럽 수출은 대기업이 하는 일 아닌가?”, “우리는 국내 납품만 하니까 상관없지 않나요?”라는 반응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글로벌 공급망이 긴밀하게 연결된 지금, 대기업의 유럽 수출 제품에 부품이나 원자재를 제공하는 모든 중소기업은 직·간접적으로 CBAM의 영향권 안에 들어갑니다. 또한, EU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등도 유사한 탄소세나 경계조정제도 도입을 논의하고 있어, 이 흐름은 일시적인 트렌드가 아닌 새로운 국제 규범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소기업이라면 지금이야말로 CBAM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사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명확히 파악하고, 필요한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할 시점입니다. 이 글에서는 CBAM이 등장한 배경과 제도 개요, 현재 적용 현황은 물론이고, 중소 제조업이 반드시 인지하고 대비해야 할 실질적인 영향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핵심 개념과 도입 배경

CBAM은 2021년 유럽연합이 'Fit for 55' 패키지 정책의 일환으로 공식 발표한 제도입니다. EU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감축하고, 2050년에는 탄소중립(Net-Zero)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이미 내부적으로 탄소배출권 거래제도(EU ETS)를 운영해 왔지만, 외국에서 수입되는 제품은 이러한 규제를 받지 않으므로탄소 누출(Carbon Leakage)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탄소누출(Carbon Leakage)

환경규제가 느슨한 국가로 생산기지를 옮기거나, 상대적으로 값싼 수입품이 시장에 들어오면서 국내 기업들이 역차별을 받는 상황을 말합니다. CBAM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되었으며, 기본적으로는 수입 제품에 대해 EU ETS와 동일한 수준의 탄소비용을 부과합니다. 제품이 생산된 과정에서 배출된 온실가스 양을 근거로 가격이 조정되며, 이는 제품 원가에 직접 반영됩니다.

이 제도는 단순한 환경 규제가 아니라, 탄소를 새로운 무역 기준으로 삼겠다는 정책 선언입니다. 유럽이라는 큰 시장에 제품을 공급하려면, 이제는 가격 경쟁력만으로는 부족하며, 탄소경쟁력(Carbon Competitiveness)이 기업의 새로운 무기가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대기업만이 아닌, 해당 제품을 함께 만드는 수많은 중소 협력업체들에게까지 전달되는 파장을 의미합니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핵심 개념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이 중소 제조업에 미치는 직·간접적 영향

 

CBAM은 처음에는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전기, 비료, 수소 등 6개 산업군을 중심으로 적용되고 있지만, 향후 확대가 예고되어 있습니다. 이 중 상당수는 국내 중소 제조업체들이 중간재 혹은 부품 가공 단계에서 참여하는 산업입니다. 따라서 유럽으로 수출하지 않더라도, 유럽에 완제품을 수출하는 대기업의 공급망에 포함된 중소기업이라면, CBAM 대응 보고서 작성을 위한 탄소정보 요청을 받게 되는 구조입니다.

예를 들어, 철강을 가공해 자동차 섀시를 제작하는 업체는, 해당 부품이 유럽 수출 차량에 장착되는 순간 CBAM 대상이 됩니다. 이 경우 완성차 기업은 CBAM 보고를 위해 협력업체로부터 공정별 탄소배출량, 에너지 사용량, 배출계수 등의 데이터를 요구하게 됩니다. 여기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면, 해당 부품에는 EU가 정한 ‘기본값(Default Value)’이 적용되며, 이 값은 실제 배출량보다 보수적으로 책정되어 추가 탄소비용 부담이 발생하게 됩니다.

결국 CBAM은 중소 제조업에게 단가 문제 이상의 이슈가 됩니다. 탄소정보 제공은 협력관계 유지를 위한 신뢰의 지표이며, 대응 역량이 부족한 기업은 대기업의 공급망에서 제외될 위험도 존재합니다. 이는 단순히 수출시장의 문제를 넘어, 국내 기업 간 관계 재편을 유도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응하지 않으면 손해, 중소기업의 준비 전략

 

CBAM 대응을 위해 중소기업이 해야 할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우선 자사 제품이 CBAM 대상 품목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공급망 관점에서 분석해야 하며, 다음 단계로는 제품별 탄소배출량 측정 체계 구축이 필요합니다. 이때는 국제표준(ISO 14067, 14064 등)을 기반으로 하는 정량적 측정이 요구되며, 경우에 따라 제3자 검증 기관의 인증까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대응은 전문 인력과 시스템이 부족한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정부와 지자체, 민간기관 등에서 다양한 지원제도를 운영 중입니다. 예를 들어 산업부는 ‘CBAM 대응 진단 컨설팅’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 보고 체계 구축 등을 지원하고 있으며, 중소벤처기업부는 ESG 경영 바우처를 통해 비용 부담을 줄이고 있습니다. 또한 일부 지역 테크노파크는 스마트공장과 CBAM 대응을 연계한 솔루션 보급사업도 운영 중입니다.

더불어 중소기업들은 개별 대응이 어렵다면, 협동조합 또는 산업단지 차원에서의 공동 대응도 모색해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탄소 데이터 공동관리 플랫폼’을 구축하거나, 전문 인증기관과 연계한 공동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식입니다. 이처럼 CBAM 대응은 ‘기업 혼자’보다 ‘연결된 기업들 간의 협력’이 더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CBAM 시대, 중소기업의 탄소역량이 곧 수출 경쟁력입니다

 

CBAM은 단순히 환경을 위한 규제 수단이 아닙니다. 이 제도는 탄소배출에 가격을 매기고, 그 부담을 수출 기업이 지도록 함으로써 글로벌 무역 질서를 바꾸고 있는 중대한 변곡점입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중소 제조업은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대상이 아니라, 적극적인 대응과 전략 수립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CBAM 대응 역량을 확보한 일부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ESG 요구사항을 충족하면서 장기 납품 계약을 체결하거나, EU 바이어의 눈높이에 맞춘 탄소중립 제품을 개발해 수출을 확대하는 등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탄소배출 관리 능력, 인증 확보, 정부지원제도 활용 등을 통해 기업 내부의 친환경 체계를 정비할 절호의 시기입니다.

CBAM은 중소기업에게 위기이기도 하지만, 선제적 준비를 통해 새로운 수출 기회를 확보할 수 있는 변화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탄소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곧 미래 제조업의 핵심 자산이 될 것입니다. 기업이 스스로 ESG 경영과 CBAM 대응을 연결하고, 이를 전략화한다면, 중소 제조업은 지속가능한 성장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